자리 찾다 30분이 가던 주말
정보처리기사 필기를 준비하던 작년 봄이었다. 평일엔 퇴근하면 녹초라서 공부는 주말에 몰아서 했고, 장소는 늘 동네 카페였다. 집에서는 도무지 집중이 안 됐으니까.
문제는 토요일 오후 카페엔 콘센트 자리가 없다는 거였음. 두 군데를 돌고 세 번째 카페에 겨우 앉으면 이미 30분이 지나 있었다. 음료에 디저트까지 시키면 한 번에 만 원 남짓, 한 달이면 십만 원 가까이 나갔다.
어느 날 같이 사는 동생이 식탁 위 영수증 더미를 보더니 물었다. "이거 다 카페야?" "공부하러 간 거야." "집에서 하면 되잖아. 요즘 카페 소리 틀어 주는 사이트도 있던데."
'그게 되면 내가 왜 나가겠어' 싶었다. 그런데 영수증을 세어 보니 할 말이 없었음. 딱 한 달만 집에서 해 보기로 했다.
첫 주는 침대가 이겼다
첫 토요일, 책상에 앉아 카페 소음을 켰다. 컵 부딪히는 소리, 멀리서 웅성거리는 말소리. '오, 제법 그럴듯한데?' 기분 좋게 25분 타이머를 눌렀다.
첫 세션은 괜찮았다. 문제는 휴식 5분이었음. 카페에서는 화장실 다녀오고 창밖 한번 보면 끝나는 시간인데, 집에서는 그 5분이 침대 위에서 시작됐다. 잠깐 눈만 감는다는 게, 눈 떠 보니 한 시간 반이 지나 있었다.
일요일도 비슷했다. 세션 두 개 하고 빨래 돌리고, 하나 더 하고 냉장고 열고. 그날 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소리만 카페지, 여긴 그냥 우리 집이구나.' 첫 주 합계는 세션 일곱 개. 카페에서라면 토요일 하루에 하던 양이었음.
카페에서 도움이 됐던 건 소리만이 아니었다
왜 카페에서는 됐는지 따져 봤다. 소리도 있었지만 그보다 먼저 '나간다'는 행동이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걸어가고, 돈을 내고 자리에 앉는 것. 돈 내고 앉은 자리에서 놀면 아깝다는 마음도 있었고, 주변 사람들이 다 뭔가 하고 있으니 나만 휴대폰 보기가 민망하기도 했다.
집에는 그중 아무것도 없었다. 카페 소음은 그 여러 가지 가운데 딱 하나를 흉내 낸 것뿐이었다. 백색소음이나 생활 소음이 집중에 주는 효과는 연구마다 결과가 엇갈린다고 하던데, 적어도 내 경우엔 소리 하나로 카페가 통째로 재현되지는 않았음.
테이크아웃 컵 하나로 출근하기
둘째 주부터 규칙을 바꿨다. 토요일 아침에 일단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테이크아웃해 온다. 그 컵이 책상에 놓이는 순간이 '출근'이다.
동생이 웃었다. "결국 카페 가네?" "가긴 가는데 커피값만 내고 바로 와." "그게 무슨 차이야." "자리를 안 찾잖아." 말해 놓고 보니 그게 꽤 큰 차이였다.
휴식 규칙도 하나 정했다. 휴식 때는 침대와 소파 금지. 일어서서 스트레칭을 하거나 물을 마신다. 휴대폰은 거실 충전기에 꽂아 두고 왔다. 소리는 카페 소음을 중간 볼륨으로, 그 아래에 빗소리를 작게 섞었다. 웅성거림만 있으면 가끔 또렷한 말소리가 귀에 걸렸는데, 빗소리를 깔면 그게 좀 뭉개졌다. 이건 순전히 내 취향이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은 카페에 간다
셋째 주에는 토요일 여덟 세션, 일요일 일곱 세션이 나왔다. 카페 시절과 비슷한 양이다. 자리 찾는 30분이 사라지니 오히려 시작이 빨라졌음.
그런데 넷째 주 일요일 오후, 아무리 해도 머리가 안 돌아갔다. 컵도 있고 소리도 있는데 그냥 지겨웠다. 그날은 가방을 싸서 진짜 카페에 갔고, 거기서 세 세션을 내리 했다. '아, 집 공부도 결국 질리는구나.'
그래서 지금은 토요일은 집, 일요일 오후 한 번은 카페로 정착했다. 동생 말로는 "결국 반반이네." "응. 근데 카페값은 반의 반이야."
한 달 해 보고 남은 것
그달 카페 지출은 테이크아웃 커피값까지 합쳐 3만 원 조금 넘게 나왔다. 필기는 그다음 달에 붙었음. 집 공부 덕분이라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주말 공부량이 줄지는 않았다.
카페 소음이 마법은 아니었다. 다만 집이라는 공간에 '지금은 일하는 시간'이라는 신호를 하나 더 얹는 데는 쓸 만했다. 집에서는 도무지 공부가 안 된다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건 이 정도다.
- 소리보다 먼저 '출근 의식'을 만든다. 옷 갈아입기, 커피 한 잔, 책상 정리 같은 것.
- 휴식 5분은 침대와 소파 밖에서 보낸다. 눕는 순간 5분은 한 시간이 된다.
- 휴대폰은 다른 방에서 충전한다.
- 카페 소음의 말소리가 거슬리면 빗소리나 핑크노이즈를 아래에 살짝 섞어 본다.
- 집이 질리는 날은 억지로 버티지 말고 밖으로 나간다. 집과 카페는 둘 중 하나만 고르는 문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