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지금 폰 보지?" 친구랑 같이 한 뽀모도로 한 달

혼자 타이머를 켜면 자꾸 핑계가 생겼다. 그래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로 말없이 25분 일하고, 5분만 떠드는 방식으로 한 달을 보냈다. 그 한 달의 기록이다.

시작은 친구의 한마디였다

자격증 시험을 두 달 앞두고 있었다. 책은 샀고, 계획표도 그렸고, 타이머도 즐겨찾기에 넣어 뒀다. 문제는 그걸 켜는 순간까지 가지 못한다는 거였음. 저녁을 먹고 나면 '조금만 쉬었다가'가 시작되고, 정신 차리면 자정이었다.

그 얘기를 대학 동기에게 했더니 바로 답이 왔다. "나도 요즘 논문 하나도 못 쓰고 있어. 그럼 우리 전화 켜 놓고 같이 할래?" "전화 켜 놓고 뭐 해?"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지. 그냥 서로 하고 있는 것만 알고."

처음엔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말도 안 할 거면 전화는 왜 해?' 그런데 밑져야 본전이라 그날 밤 아홉 시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첫날: 25분 동안 들린 건 키보드 소리뿐

규칙은 단순했다. 각자 자기 화면에서 타이머를 켜고, "셋, 둘, 하나" 하고 동시에 시작 버튼을 누른다. 집중 시간에는 마이크는 켜 두되 말은 안 한다. 알람이 울리면 5분 동안만 떠든다.

시작하고 10분쯤 지났을 때 습관처럼 휴대폰에 손이 갔다. 그 순간 이어폰에서 친구가 타자 치는 소리가 들렸다. '쟤는 지금 쓰고 있는데 나는 뭐 하냐.' 손을 슬그머니 내렸다. 이건 진짜 인정함. 누가 지켜보는 것도 아닌데, 같이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딴짓이 민망해졌다.

첫 알람이 울리자마자 친구가 말했다. "와, 나 방금 25분 동안 한 문단 썼어. 이번 주 최고 기록." "나는 문제 열두 개 풀었어." 별것 아닌 숫자인데 둘 다 웃었다. 그날은 네 세션 하고 끊었다.

둘째 주: 5분 수다가 30분이 된 날

당연히 잘만 된 건 아니다. 둘째 주 수요일, 휴식 시간에 친구가 회사 얘기를 꺼냈다. "아 그리고 오늘 팀장님이 말이야…" 그 얘기가 재밌었던 게 문제였음. 타이머는 진작 울렸는데 둘 다 못 들은 척했다. 결국 그날은 수다 40분에 집중 두 세션으로 끝났다.

다음 날 규칙을 하나 추가했다. 휴식이 끝나는 알람이 울리면 하던 얘기가 아무리 재밌어도 "이따 마저 해" 하고 바로 시작 버튼을 누르기. 대신 그날 마지막 세션이 끝나면 마음껏 떠들기로 했다. 미뤄 둔 얘기가 있으니 마지막 세션까지 버틸 이유도 하나 생겼다.

그리고 하나 더. 휴식 시간에는 둘 다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했다. 물을 뜨러 가든 창문을 열든, 화면 앞에 앉아서 떠들면 휴식이 아니라 그냥 딴짓의 연장이 되더라.

"너 지금 폰 보지?"

셋째 주쯤 되니 서로의 소리만 들어도 상태가 보였다. 친구 쪽에서 한동안 아무 소리가 안 나면 '아, 막혔구나' 싶었고, 나도 페이지를 안 넘기고 있으면 친구가 귀신같이 알아챘다.

어느 날 휴식 시간에 친구가 대뜸 물었다. "너 아까 15분쯤에 폰 봤지?" "어떻게 알았어?" "너 폰 볼 때 숨소리가 달라져." 둘 다 한참 웃었다. 근데 그 뒤로 집중 시간에 폰을 아예 다른 방에 두게 됐음. 들키는 게 싫어서.

소리 얘기도 하나 하자면, 나는 통화 소리 뒤에 빗소리를 작게 깔아 두는 게 좋았다. 친구 키보드 소리가 너무 또렷하면 오히려 신경이 쓰였는데, 빗소리가 그 위를 살짝 덮어 주니까 '누군가 옆에 있다'는 느낌만 남았다. 친구는 아무것도 안 트는 쪽이 낫다고 했다. 이건 정말 사람마다 다른 것 같다.

같이 하기가 안 맞는 날도 있다

모든 날이 좋았던 건 아니다. 내가 암기 과목을 하던 날에는 소리를 내서 외우고 싶었는데, 통화 중이라 그러기가 애매했다. 그런 날은 "오늘은 각자 할게" 하고 혼자 했다. 친구가 마감에 쫓겨 50분씩 몰아서 해야 했던 주에도 박자를 맞추기 어려워서 따로 했다.

이런 방식을 '바디 더블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누군가 곁에 있으면 시작이 쉬워진다는 경험담은 많은데, 연구로 탄탄하게 증명된 방법이라고 하기는 아직 어렵다고 한다. 나한테 효과가 있었던 것도 '감시' 때문이라기보다 '약속'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홉 시에 전화가 오니까, 일단 책상에는 앉게 되는 것. 그게 전부였고, 그게 제일 컸음.

한 달 뒤에 남은 것

한 달 동안 통화한 날은 스무 날 정도였다. 시험은 아직 남았고, 친구 논문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래도 마지막 날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이거 안 했으면 지금쯤 둘 다 '다음 주부터 진짜 한다' 하고 있었을걸." 맞는 말이라 반박을 못 했음.

혹시 같이 해 볼 사람이 있다면, 우리가 한 달 동안 다듬은 규칙은 이 정도다.

  • 시작은 "셋, 둘, 하나"로 동시에 누른다. 각자 자기 타이머를 쓰되 박자만 맞춘다.
  • 집중 시간에는 마이크를 켜 두되 말은 하지 않는다. 진짜 급한 일만 예외.
  • 휴식 알람이 울리면 얘기가 아무리 재밌어도 끊는다. 남은 얘기는 마지막 세션 뒤로 미룬다.
  • 휴식 시간에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화면 앞 수다는 휴식이 아니다.
  • 과목이나 일정이 안 맞는 날은 억지로 맞추지 말고 "오늘은 각자"라고 말한다.
  • 통화 소리가 거슬리면 배경 소리를 작게 깔아 본다. 맞는 소리는 사람마다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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