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분이 사치였던 밤
육아휴직 1년째, 복직까지 석 달이 남은 시점이었다. 돌아가면 데이터 정리 업무를 새로 맡게 되어 있어서 SQL을 처음부터 공부해야 했다. 문제는 시간이었음. 낮에는 아이를 보고, 저녁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나면 빨라야 밤 10시였다.
그래도 의욕은 있었다. 노트북을 켜고 타이머를 25분에 맞췄다. 그런데 12분쯤 지났을 때 아기 모니터에서 칭얼거리는 소리가 났다. 달래고 돌아오니 30분이 지나 있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비슷했다. 사흘 내리 25분짜리 세션을 한 번도 끝까지 못 채웠다.
그때 든 생각은 이거였다. '뽀모도로는 시간 많은 사람들이나 하는 거구나.' 솔직히 좀 서러웠음.
"0분보단 낫잖아"
나흘째 밤, 노트북 앞에서 한숨 쉬는 걸 남편이 봤다. "오늘도 할 거야?" "해야지. 근데 어차피 또 중간에 깰 거야." "그럼 25분 말고 짧게 하면 되잖아." "15분 해서 뭐 해. 겨우 개념 하나 볼까 말까인데." "그래도 0분보단 낫잖아."
'그건 맞는 말이라 더 얄밉네' 싶었다. 그런데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날 바로 타이머 설정에서 집중을 15분, 짧은 휴식을 3분으로 바꿨다.
처음엔 자존심이 좀 상했다. 남들은 25분, 50분씩 한다는데 15분이라니. 그런데 첫 세션이 끝나고 알람이 울렸을 때 묘한 기분이 들었다. 며칠 만에 처음으로 '끝까지 했다'는 감각이 생긴 거다. 15분 동안 한 건 SELECT 문 예제 다섯 개가 전부였는데도.
15분으로 줄였더니 달라진 것
15분은 아이가 깰지 말지 따져 볼 필요도 없는 길이였다. 25분일 때는 시작 버튼을 누르기 전에 '오늘은 몇 분 만에 깨려나' 하고 계산부터 했는데, 15분은 그냥 눌렀다. 시작이 가벼워지니까 앉는 횟수가 늘었다.
휴식 3분은 거의 아기 모니터 확인용이었다. 화면을 한 번 보고,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시작. 첫 주에는 하루 평균 세 세션, 둘째 주부터는 네다섯 세션까지 됐다. 합치면 한 시간 남짓인데, 그 전 주에 실제로 공부한 시간이 거의 0이었으니 이건 엄청난 발전이었음.
소리는 이어폰 한쪽에만 빗소리를 작게 틀었다. 다른 한쪽 귀는 일부러 비워 뒀다. 아이 소리를 놓치면 안 되니까. 빗소리가 있으면 냉장고 소리나 바깥 차 소리가 덜 거슬려서 좋았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내 경우다.
아이가 깨는 밤의 규칙
15분이어도 깨는 날은 깼다. 처음에는 깨면 일시정지를 누르고 뛰어갔다가, 돌아와서 이어서 시작했다. 그런데 20분쯤 아이를 안고 있다 돌아오면 남은 7분을 이어 봐도 머릿속이 완전히 백지였다. '내가 아까 무슨 쿼리를 짜고 있었더라?'
그래서 규칙을 하나 만들었다. 10분 안에 돌아오면 이어서 하고, 그보다 오래 걸리면 리셋하고 그 세션을 처음부터 다시 한다. 그리고 일시정지를 누르기 직전에 노트에 딱 한 줄을 적는다. "JOIN 조건 쓰는 중, 고객 테이블 기준." 이 한 줄 덕분에 돌아와서 헤매는 시간이 확 줄었음.
한번은 새벽 1시에 아이를 재우고 나왔더니 남편이 물었다. "이제 자자. 내일 해." "딱 한 세션만." "15분이니까?" "응, 15분이니까." 남편이 웃으면서 먼저 들어갔고, 나는 그 세션을 끝내고 잤다. 25분이었으면 아마 그냥 덮었을 거다.
안 한 날은 세지 않기로 했다
아이가 아프거나 내가 너무 지친 날도 많았다. 처음엔 그런 날마다 '또 하루 날렸다'는 생각에 잠이 안 왔다. 달력에 공부 못 한 날을 X로 표시해 뒀는데, 둘째 주 달력이 X로 가득한 걸 보고 그만뒀다. 보면 볼수록 의욕만 깎였다.
대신 한 날에만 동그라미를 치고, 그 안에 세션 수를 적었다. "오늘도 할 거야?" "오늘은 쉴래." 이 대화가 오가는 날이면 그냥 쉬었다. 죄책감 없이. 이상하게도 그렇게 마음을 놓은 다음 날이 오히려 세션이 많았다.
하나 분명히 해 두자면, 15분이 누구에게나 정답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내 상황에서는 25분이 버틸 수 없는 길이였고, 줄이니까 비로소 굴러갔다는 것뿐이다. 25분은 출발점으로 정해 둔 기본값이지, 지켜야 하는 규칙은 아니라는 걸 그때 몸으로 배웠다.
석 달 뒤에 남은 것
석 달 동안 동그라미를 친 날은 쉰다섯 날, 세션은 백사십 개 정도였다. 시간으로 치면 서른다섯 시간 남짓. 전문가가 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지만, 복직 첫 주에 팀장님이 "SQL 좀 해요?"라고 물었을 때 "기본은 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는 됐다.
지금은 회사에서 25분으로 쓰고 있다. 아무도 안 깨우는 25분이 이렇게 길고 편한 줄 몰랐음. 혹시 나처럼 짧고 자주 끊기는 시간밖에 없는 사람이 있다면, 석 달 동안 쌓인 요령은 이 정도다.
- 25분이 번번이 끊긴다면 15분이나 10분으로 줄인다. 끝까지 채우는 경험이 먼저다.
- 일시정지를 누르기 전에 지금 하던 일을 노트에 한 줄 적는다.
- 10분 안에 돌아오면 이어서, 그보다 길어지면 리셋하고 새로 시작한다.
- 아이 소리를 들어야 한다면 배경 소리는 이어폰 한쪽에만, 작게 튼다.
- 못 한 날 대신 한 날만 기록한다. 쉬는 날은 죄책감 없이 쉰다.
- 상황이 바뀌면 시간도 다시 늘린다. 짧은 타이머는 버티기 위한 도구다.